신분증, 현금, 신용카드까지 모두 들어있는 지갑을 잃어버린다면 어떨지 상상이 되는가? 그것도 한국도 아니라 외국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평소 뭘 잘 잃어버리지도 않는 성격인 데다, 중학교 시절 지갑을 잃어버린 후로는 잃어버린 적이 없었는데 그것도 하필 냐짱에서 지갑을 잃어버릴 줄이야...
지갑 분실 발견
프리미어 하바나 나트랑 호텔에서의 2박을 마치고 체크아웃을 하면서 미니바에서 먹은 컵라면 하나를 결제하느라 지갑을 꺼냈었다. 호텔리어의 짐을 맡기길 원하느냐의 친절한 권유에 따라 프런트 옆 짐 맡기는 곳에 짐을 맡겼다. 잠시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 그랩을 불렀고 몇 분 만에 택시가 도착해 롱선사로 향했다. 그랩은 어차피 목적지 설정과 결제 카드가 어플에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지갑을 다시 열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촉이라는 게 있었는지, 택시 조수석에 앉아 여행 내내 들고 다니던 천가방에 손을 넣어 소지품이 잘 있는지 하나씩 확인하던 중 설마 설마 하다가 진짜 설마임을 발견했다.ㅠㅠ
프리미어 하바나 나트랑 호텔에서 롱선사까지 걸리는 단 9분, 롱선사의 입장료도 무료라서 지갑을 분실한 것을 알아차리려면 원래대로라면 그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어야 맞다. 롱선사 다음으로 갔던 롯데마트 냐짱에서 계산할 때 알게 되었을까? 그래도 운이 따라줬는지 롱선사 가는 그 9분 사이에 마음씨 좋은 그랩 택시 기사분의 차를 탄 상황에 알게 된 게 지금 생각해 보면 감사하다. 택시 안에서 가방 안의 물건을 찾는 나의 제스처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다 도착했다고 말하는 택시기사에게 '아이 로스트 마이 월렛'을 외쳤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였지만 나의 울상 표정과 제스처로 한국에서 온 이상한 사람이 지갑을 잃어버렸음을 짐작했으리라...
백 투 더 호텔(Back to the hotel)
다시 호텔로 가달라고 택시기사분께 부탁했고, 우리는 롱선사의 문 앞에서 다시 체크아웃했던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프런트에서 꺼냈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의 지갑의 행방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정말 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바로 뒤에 체크아웃을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가져갔나?
그랩 호출하려고 소파에 앉아있을 때, 옆 사람이 자꾸 우리 쪽을 쳐다보던데, 그 사람이 가져갔을까?
그 안에 현금은 별로 없었지만 신한 SOL 트래블카드와 하나 트래블로그 체크카드 모두 있는데, 그걸로 누군가가 이미 출금을 시도했으면...?
걱정이 되어 호텔에 다시 도착할 때쯤 파파고 어플을 켜서 '보통 지갑을 잃어버리면 찾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는데, 그랩 기사분에게 나의 의도는 정확히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기사분은 자기 차 바닥을 가리키며 여기 없지 않냐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베트남 사람들의 평균적인 시민의식이 궁금했던 것인데, 그분의 대답이 얼마큼의 정확도가 있겠냐만은 낯선 땅에서 옆에 있는 현지사람에게 내가 물어볼 수 있는 최상이지 아니었나 싶다.
낯선 땅에서 잃어버린 내 지갑이 다시 내 손에...
정말 울고 싶은 심정으로 지갑을 마지막으로 꺼냈던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도착했다. 호텔리어에게 혹시 지갑을 못 봤냐고 물으니 아까 짐 맡긴 곳에 가보란다. '아.. 짐 맡긴 곳에서 유실물 관리도 하는가 보구나.'하고 약 30분 전 내가 캐리어를 건넸던 그 직원에게 혹시 유실물로 지갑이 들어온 게 없냐고 묻자, 당황한 기색이 없이 '네 방 번호가 몇 호니?'라고 묻는 게 아닌가...
아니...난 짐을 맡기려는 게 아니고요,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알았다며, 'Wait a moment.'라고 짧게 말하며, 바로 뒤 방으로 들어가 익숙한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지갑에서 내 신분증을 꺼내고 이름이 뭐냐고 묻고 내가 말한 답과 일치하자 지갑을 돌려줬다. 오... 세상에... 그때 기분이란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십 년 감수했다는 말을 그럴 때 쓰는 건가... 90도로 허리를 굽혀 몇 번이나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그런데 궁금해서 '이 지갑이 어디에 있었나요?'라고 물으니, 바로 그 짐 맡기는 곳 데스크 위에 있었단다.ㅠㅠ 프런트에서 미니바 컵라면 계산을 한 후, 지갑을 그대로 들고 가서 그 위에 올려놓았던 걸로 추측한다. 이런 칠칠치 못한 행동을 봤나... 암튼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갑을 찾은 후, 30분 전과 동일하게 그랩을 잡고 다시 원래의 목적지인 롱선사로 향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찾으면서 느낀 감사
지갑을 해외에서 잃어버릴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몇몇 글에서 소매치기 경험담이나 조심 하라는 글은 많이 봤지만, 내 손으로 지갑을 흘리고 다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무엇보다 좋았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냐짱 하면 1초 만에 생각날 추억을 하나 건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갑 사건으로 인해 그랩 기사와 프리미어 하바나 나트랑 호텔 직원분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 두 분중 한 분이라도 이 글을 읽을 확률은 무척 낮겠지만 꼭 복 받으실거라고 전해드리고싶다. 그땐 경황이 없어서 택시비가 얼마가 나왔는지 생각도 안 했는데, 나중에 그랩 어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기사분은 호텔에서 롱선사에 간 내역에 대해서만 결제를 확정했고, 롱선사에서 다시 호텔로 데려다 준 금액에 대해서는 청구하지 않았던거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경우라도 이동한 거리만큼 택시비를 청구한 게 당연한 것일텐데, 아마도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게 안쓰러웠는지 공짜로 태워다주신 셈이다. 인상도 좋으셨던 나이 지긋하신 그랩 기사분 덕분에 나트랑에 대한 기억이 훨씬 좋아졌다. 내 지급을 잃어버린 상태 그대로 보관했다가 찾아주신 하바나 나트랑 호텔 직원분께도 너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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